우리는 그때 외쳤다.
"학생인권 보장하고 똥쌀권리 보장하라!"
그리고, 수많은 학생 들과 선생님들이 응암오거리로 나와서 외쳤다.
우리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학생인권무시와 부실한시설들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외쳤다.
그리고 대략 5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충암중학교는 방학을 맞이하였다.
지금은 화장실이 생기고, 냉온풍기가 생겼다
하지만, 아직 화장실은 밖에 단 하나밖에 없고, 냉온풍기도 5~6교시에만 잠깐 틀고 말았다.
폭염주위보가 터질때는 3교시부터 틀었다.
하지만, 바뀐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2차시위도 했었는데, 이건 구교대의 심한통제로 학생들은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방학...지금은 또 하나가 바뀌고 있더라...
그것은 바로 후문이다.
다른사람들은 후문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길이 화장실로가는 가장 빠른길이고, 매점, 수돗가로 가는 가장 빠른길이자, 다른건물, 그리고 운동장으로 가는 길이다.
그곳을 공사하고있지만, 과연 어떻게 바뀔련지 궁금하다.
우리학교옆에 건물을 하나더지어 화장실을 만든다고 하였다.
하지만 공사한다고 해놓고 공사를 하려는 흔적도 없었으며, 고작 한다는것이 그나마 우리가 다닐수있는 길을 다시 부숴놓고 공사를 한다는것이였다.
그럼, 이렇게 공사를 하는데 내가 다른사람보다 우리학교를 싫어하는줄 알까?
방학1달전, 우리반에있는애가 핸드폰을 모르고 안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핸드폰을 안것었고, 나중에 알고서 덮어주었다.
그런데 다른애가 그 핸드폰을 빌려서 게임을 하다가 담임선생님께 걸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모두가 보는앞에서 그 2명과 나를 죽어라 패고, 핸드폰을 부숴버렸다.
그때 선생님은 물어주는 대신에, 학교에서 징계를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그건 경고가 아니라 거의 협박의 수준에 다달았다.
우리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다행이도, 걔는 공짜로 A/S를 하였다...정말 다행이엇다.
그런데, 그게 담임선생님한테 걸린다면 또다시 핸드폰이 부숴지게될것이다.
결국 계는 핸드폰도 못내고, 숨기고 다닌다. 불쌍하다.
그리고 보름, 갑자기 두발검사를 한다고하였다.
우리반에서 머리가 좀 길었던 나는, 당장 머리를 조금 짧아보이게 숨기었고 나는 안걸렸지만..... 그리고 걸린애들도 심하게 안잡을줄 알았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바리깡을 들고 등장하는것이 아닌가!!
결국 걸린애들은 바리깡으로 머리 밀리고, 다른반애들도 머리 밀어버리려고 하였다.
덕분에 계네들은 좌절하고, 미용실가서 다시 머리를 가다듬었다.
담임선생님이 머리를 죽어라 못자리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학교에는 비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사장이라는 사람은 공금을 횡령하여서 고급차 타고 다니는데, 우리는 밖에 있는 화장실가는것도 힘들어한다. 갔다오면 쉬는시간이 끝나있다.
더구나 맨날 새로운 학년이 시작될때마다 페인트칠을한다. 죽어라 하고 옷을 버린다.
페인트칠을 깨끗이 해도 돌아오는것은 없다.
그냥 우리는 페인트칠을 구교대가 시키니까 할수없이 한다.
뭐..가끔은 선생님들이 해주실때도 있긴하지만...
페인트칠다시한다고 학교가 새로워 지는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시 외치고 싶어한다.
똥쌀권리 보장하라!
1차 시위 당일, 등교할때 잠겨있어서 등교가 불가능하였다.
결국 우리는 월담하였고, 끝까지 잠겨있었다. 이건 무엇을 위미 하는것일까?
대체 무엇때문에 문을 잠가버린것일까?
설마 시위를 막을려는 충암의 횡포가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변명하겠지.
"문여는 학생이 실수로 열쇠를 안가져왔어요"
"깜빡하고 실수로 안열었어요"
그럼 질문하나 합시다,
학교 문을 학생이 갖고 다닙니까? 그게 말이 되는겁니까?
문열어주는게 뭐 그리 귀찬은거라고 등교시간이 11시인 날에 문을 안열어 놓은것입니까
그리고 시위시간...


응암오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신호등 건너편에서는 구교대교사들이 막아서서 시위대로 진입이 불가능하였다.
결국 학생들은 건너편에서 시위대를 응원했고,
시위대랑 집이 가까웠던나는 빨리 도착해서 시위를 할수 있었다.
그런데, 뒷편에서 시위를 못하게 막는 선생들이, 우리를 빨리 나가라고 유혹했고,
협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쳤다.
이들은 구민이 아니다, 그냥 분위기 탈려고 온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전교조이고, 학부모 이다. 더이상 참을수 없어서 그 분노가 터지고 말았다.
전교조 선생님을 강제로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전근 보내고, 그 사실을 안사람들은 더욱더 분노하였다.
우리들은 외쳤다. 하지만 지금도 바뀐것이 거의없다.
그리고 전교조 시위대도 지쳤는지, 지금은 잠잠하다.
다시 일어서자, 다시한번 전교조, 학부모, 학생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자.
학교의 주인은 이사장, 교장따위가 아니다.
사립학교여도, 일단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학교는 우리의 교육의 수단이지, 이사장의 돈벌이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비리를 참아왔고, 인권무시를 버텨왔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외칠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계기가 이 1차 시위다.
나는 그때를 기억하고있다.
우리가 죽어라 외치던 그때를, 두발에 두려워 하는 우리를, 시설이 불편해서 고통받는 우리들, 후문에 있는 스팀때문에 화상으로 고통받는 우리를.....
외치자...
학생인권을 보장하고 똥쌀권리 보장하라!
그전에...
우리는 너희의 권리를 보장하며 외치고 있는것이다. 절때 우리한테 이기려 하지마라.
시위다음날에 나눠줬던 가정통신문... 그거 믿는사람 거의 없다.
더구나 학생부장이란 사람은 우리보고 맨날 "촛불시위는 불법이다. 이명박이 진리다"하고 다니면서 미친듯이 애들을 패고다니는데, 우리는 인제 참을수 없다.
나는 그때를 기억한다.
우리, 다시한번 일어설 때가 왔다. 전교조와 학생, 학부모의 힘을 보여주자.
그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
다시한번 외치어 바뀐 충암을 보고싶다.
다같이 외치자!
"학생인권 보장하고 똥쌀권리 보장하라"
아래는 시위당시 사진이다.
나는 충암에서 사랑하는 "컴퓨터 해체팀"이다.
덕분에 충암선생님들중에 컴퓨터 선생님들은 나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나는 충암이 좋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을 위해 외치고, 구교대를 위해서 이렇게 외친다.
단지, 돈을 좋아하는 그들을 위해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이글을 본 충암학생은 들어라,
나는 2학년2반 김민호다. 중학교에 다니며, 나는 그때를 기억하고, 다시일어서고 싶다.
학교에서 나를 징계처리해도 좋다.
나는 할말을 하고있고, 당연한 소리를 하고있을뿐이다.
그리고, 학교가 정치의 수단이 될수가 없다는것을 명심하자.
그때를 기억하고 우리는 외치자...
충암의 좋은 미래를 위해... 우리의 인권을 위해, 좀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기위해
그때를 기억하자
"학생인권 보장하고 똥쌀권리 보장하라!"
그리고, 수많은 학생 들과 선생님들이 응암오거리로 나와서 외쳤다.
우리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학생인권무시와 부실한시설들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외쳤다.
그리고 대략 5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충암중학교는 방학을 맞이하였다.
지금은 화장실이 생기고, 냉온풍기가 생겼다
하지만, 아직 화장실은 밖에 단 하나밖에 없고, 냉온풍기도 5~6교시에만 잠깐 틀고 말았다.
폭염주위보가 터질때는 3교시부터 틀었다.
하지만, 바뀐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2차시위도 했었는데, 이건 구교대의 심한통제로 학생들은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방학...지금은 또 하나가 바뀌고 있더라...
그것은 바로 후문이다.
다른사람들은 후문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길이 화장실로가는 가장 빠른길이고, 매점, 수돗가로 가는 가장 빠른길이자, 다른건물, 그리고 운동장으로 가는 길이다.
그곳을 공사하고있지만, 과연 어떻게 바뀔련지 궁금하다.
우리학교옆에 건물을 하나더지어 화장실을 만든다고 하였다.
하지만 공사한다고 해놓고 공사를 하려는 흔적도 없었으며, 고작 한다는것이 그나마 우리가 다닐수있는 길을 다시 부숴놓고 공사를 한다는것이였다.
그럼, 이렇게 공사를 하는데 내가 다른사람보다 우리학교를 싫어하는줄 알까?
방학1달전, 우리반에있는애가 핸드폰을 모르고 안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핸드폰을 안것었고, 나중에 알고서 덮어주었다.
그런데 다른애가 그 핸드폰을 빌려서 게임을 하다가 담임선생님께 걸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모두가 보는앞에서 그 2명과 나를 죽어라 패고, 핸드폰을 부숴버렸다.
그때 선생님은 물어주는 대신에, 학교에서 징계를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그건 경고가 아니라 거의 협박의 수준에 다달았다.
우리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다행이도, 걔는 공짜로 A/S를 하였다...정말 다행이엇다.
그런데, 그게 담임선생님한테 걸린다면 또다시 핸드폰이 부숴지게될것이다.
결국 계는 핸드폰도 못내고, 숨기고 다닌다. 불쌍하다.
그리고 보름, 갑자기 두발검사를 한다고하였다.
우리반에서 머리가 좀 길었던 나는, 당장 머리를 조금 짧아보이게 숨기었고 나는 안걸렸지만..... 그리고 걸린애들도 심하게 안잡을줄 알았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바리깡을 들고 등장하는것이 아닌가!!
결국 걸린애들은 바리깡으로 머리 밀리고, 다른반애들도 머리 밀어버리려고 하였다.
덕분에 계네들은 좌절하고, 미용실가서 다시 머리를 가다듬었다.
담임선생님이 머리를 죽어라 못자리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학교에는 비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사장이라는 사람은 공금을 횡령하여서 고급차 타고 다니는데, 우리는 밖에 있는 화장실가는것도 힘들어한다. 갔다오면 쉬는시간이 끝나있다.
더구나 맨날 새로운 학년이 시작될때마다 페인트칠을한다. 죽어라 하고 옷을 버린다.
페인트칠을 깨끗이 해도 돌아오는것은 없다.
그냥 우리는 페인트칠을 구교대가 시키니까 할수없이 한다.
뭐..가끔은 선생님들이 해주실때도 있긴하지만...
페인트칠다시한다고 학교가 새로워 지는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시 외치고 싶어한다.
똥쌀권리 보장하라!
결국 우리는 월담하였고, 끝까지 잠겨있었다. 이건 무엇을 위미 하는것일까?
대체 무엇때문에 문을 잠가버린것일까?
설마 시위를 막을려는 충암의 횡포가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변명하겠지.
"문여는 학생이 실수로 열쇠를 안가져왔어요"
"깜빡하고 실수로 안열었어요"
그럼 질문하나 합시다,
학교 문을 학생이 갖고 다닙니까? 그게 말이 되는겁니까?
문열어주는게 뭐 그리 귀찬은거라고 등교시간이 11시인 날에 문을 안열어 놓은것입니까
그리고 시위시간...
신호등 건너편에서는 구교대교사들이 막아서서 시위대로 진입이 불가능하였다.
결국 학생들은 건너편에서 시위대를 응원했고,
시위대랑 집이 가까웠던나는 빨리 도착해서 시위를 할수 있었다.
그런데, 뒷편에서 시위를 못하게 막는 선생들이, 우리를 빨리 나가라고 유혹했고,
협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쳤다.
이들은 구민이 아니다, 그냥 분위기 탈려고 온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전교조이고, 학부모 이다. 더이상 참을수 없어서 그 분노가 터지고 말았다.
전교조 선생님을 강제로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전근 보내고, 그 사실을 안사람들은 더욱더 분노하였다.
우리들은 외쳤다. 하지만 지금도 바뀐것이 거의없다.
그리고 전교조 시위대도 지쳤는지, 지금은 잠잠하다.
다시 일어서자, 다시한번 전교조, 학부모, 학생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자.
학교의 주인은 이사장, 교장따위가 아니다.
사립학교여도, 일단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학교는 우리의 교육의 수단이지, 이사장의 돈벌이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비리를 참아왔고, 인권무시를 버텨왔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외칠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계기가 이 1차 시위다.
나는 그때를 기억하고있다.
우리가 죽어라 외치던 그때를, 두발에 두려워 하는 우리를, 시설이 불편해서 고통받는 우리들, 후문에 있는 스팀때문에 화상으로 고통받는 우리를.....
외치자...
학생인권을 보장하고 똥쌀권리 보장하라!
그전에...
우리는 너희의 권리를 보장하며 외치고 있는것이다. 절때 우리한테 이기려 하지마라.
시위다음날에 나눠줬던 가정통신문... 그거 믿는사람 거의 없다.
더구나 학생부장이란 사람은 우리보고 맨날 "촛불시위는 불법이다. 이명박이 진리다"하고 다니면서 미친듯이 애들을 패고다니는데, 우리는 인제 참을수 없다.
나는 그때를 기억한다.
우리, 다시한번 일어설 때가 왔다. 전교조와 학생, 학부모의 힘을 보여주자.
그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
다시한번 외치어 바뀐 충암을 보고싶다.
다같이 외치자!
"학생인권 보장하고 똥쌀권리 보장하라"
아래는 시위당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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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암에서 사랑하는 "컴퓨터 해체팀"이다.
덕분에 충암선생님들중에 컴퓨터 선생님들은 나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나는 충암이 좋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을 위해 외치고, 구교대를 위해서 이렇게 외친다.
단지, 돈을 좋아하는 그들을 위해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이글을 본 충암학생은 들어라,
나는 2학년2반 김민호다. 중학교에 다니며, 나는 그때를 기억하고, 다시일어서고 싶다.
학교에서 나를 징계처리해도 좋다.
나는 할말을 하고있고, 당연한 소리를 하고있을뿐이다.
그리고, 학교가 정치의 수단이 될수가 없다는것을 명심하자.
그때를 기억하고 우리는 외치자...
충암의 좋은 미래를 위해... 우리의 인권을 위해, 좀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기위해
그때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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